내가 다니는 회사 인프랩 팀에선 매년 짧은 겨울방학 숙제로 연말회고를 작성한다.
그 내용임.
재밌었던거
여름 폭우
올해 여름 폭우는 피해도 있었지만 나름 재밌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갑자기 미친듯이 비가 오면서 팀원들이 퇴근했는데 귀가에 실패하고 회사로 돌아오는게 심상치 않았다.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셰리랑 옥돌이랑 태리랑 퇴근할때 물이 차올라 차를 돌리고 길을 찾고 했던게 종종 기억난다. 물살을 가르는게 생각보다 재밌었다.이때 다행히 차가 침수되지 않아서 고트한테 차를 팔 수 있었지.ㅋㅋㅋ
담날에 출근하니 사무실이 초토화 되어 있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일이라 막막하면서도 신기한 느낌이라 그렇게 싫지 않았다. 물론 밤에도 나와서 양동이 물 비우고 비닐로 물길 만들고 개고생 하긴 했지.. 천장 석고가 바닥에 철퍼덕 떨어질때마다 뭔가 일어날게 내 눈앞에서 나만 볼때 일어나는거 같아 재밌었다.
종종 비 많이 올때마다 기억날거 같다.ㅋㅋㅋ
그래도 이런 폭우는 안 일어나는게 좋겠다..
인프콘
인프콘은 우리가 어떤 팀이라는걸 대중에 알리는 숙원사업 같은 느낌이었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는데 다행히 앨리스가 합류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끝나게 됐다. 이후 갈릴레오가 만들어지면서 멋지게 행사를 만들갔다.
솔직히 난 하자고 한거 말고는 도와준게 없는데, 축하를 직접적으로 가장 많이 받은건 아무래도 나일것이다. 이 부분은 좀 부끄럽기도 했는데, 그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다.
팀원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얼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사회에서 이런 즐거움, 성취감, 액티브함, 불태움.. 등을 함께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다. 희귀하고도 소중한 경험이다. 인프콘을 통해 고객들에게 우리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것도 좋았지만, 팀 전체가 이런 경험을 함께 했다는게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긴하다.
아 팀원들은 발표 잘했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슨일 있었냐고 하고 극과극 반응도 재밌었다.ㅋㅋ
이사
사무실 못구해서 이러다 거리에 나앉는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다가, 지금 사무실 자리가 났다. 2016년 혼자 노트북 들고 다니던 코워킹스페이스가 바로 보이는 자리였다.
이제까지의 규모에 비해서 무척 큰 사무실 이었고 팀도 늘어서 인테리어도 꽤 하기로 했다. 우드&화이트 톤으로 정하고 마루가 넓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이후는 이사준비위원회 님들이 100% 멋지게 일을 해냈다.
원래 물건에 의미부여 하는 성격이 아니라 그 전 사무실들은 걍 사무실 이었는데 여기는 우리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뷰도 넘 좋구.
이사 당일 짐정리 1차로 끝나고, 불꺼진 사무실에서 바로 앞의 6년전에 인프랩을 시작했던 곳을 바라보니 여러 생각이 들더라.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구나..
전복구이
어디서 선물로 전복이 들어왔었는데, 회사로 가져와서 전복구이를 같이 해먹었다. 그때가 리모트 체제라 많이 팀원들도 딱 먹기 좋은 정도였다. 뻥 안까고 태어나서 먹어본것중에 젤 맛있었다. 담엔 김치전 해먹고 싶다.
어려웠던거
CSO
팀이 커지면서 특히 작년말(2021년말)에 이제 내가 모든 사안을 정확하게 알고 의사결정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채용 서비스가 생기면서 초기 서비스를 워킹 시키기 위해선 내가 신경을 많이 써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잘하는게 그거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 대신 인프런에 대해서 운영적으로 의사결정을 할만한 사람을 데려오기로 했다.
교육서비스에서 잔뼈가 굵은 움파를 알게 됐고, 이야기가 잘 진행되어 CSO로 영입을 하게 됐다. 움파는 적은 정보로도 빠른시간에 흐름을 파악하고 좋은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 이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쉬운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 그만하자고 합의를 했다.
움파가 나가게 되면서 이때 있던 혼돈의 카오스적인 분위기가 아주 대단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전체 분위기가 싱숭생숭 해지는게 느껴지고, 이 사건에 대한 해석과 이해, 갖고 있는 정보가 모두 달랐다. 리더는 한사람이 있을때도 떠났을때도 정말 중요하구나 싶기도 했다.
음. 각자의 길을 가게 된거에 대해선 옳은 선택이었지만, 그게 일어나기 이전의 과정, 내 역할에 대해서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을때 더 적극적으로 붙잡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걍 믿고 지켜봐야 되는것과 아닌것을 구분하지 못했던거 같다. 아님 그 대화가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 피했던거 아닌가 싶다. 믿는다는 핑계로 피했던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지금은 든다. 이형주 완전 안이해짐.
향로가 처음 왔을때 정말 많이 이야기하고 맞추고 싸우고 그랬는데, 최소한.. (생각만 해도 힘들군) 그 정도를 해야했지 않았을까?? 물론.. 뭐 그렇게 했어도 문화적인게 안맞아서 안될수도 있는거지만 그래도 나의 노력에 대해선 반성이 많이 된다. 내가 할건 힘들고 구찮아도 해야된다.
어느 정도로 있어야 되냐 그 균형
난 꽤 위임과 권한 부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팀이 커지고 다양해지면서 내가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나 고민을 한적이 여러번 있다. 한 1000만번은 되는듯.
특히 프로덕트 부분에 PO와 PD가 중간에 들어가면서 더 많이 생각할 요소가 많아진거 같다. 매일 적정한 선을 찾으려고 생각을 한다. 요즘 좀 명확해 진건 있는데, 언제나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해서 생각하자는거다.
직업적 전문성이 그 선택의 존엄을 의미하는건 아니다. 언제나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제품이 아니라면 이야기 할 수 있는 문화가 좋은거 같다.
스타트업 혹한기
원래 올해 하반기에 투자 받을 생각이었다. 근데 여러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나중으로 미루는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러면서 속도나 우선순위 선택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다행이 우리는 큰 목표에 가는 길에 매출적인 것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큰 방향에선 변화가 없다. 이건 이 레일에 끌어 올려놓은 초기 팀원들의 업적과 헌신 덕분이다. 고마워용.
업계가 요동치고 특히 내년 많은 도전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때 살아남고 더 높이 성장한다면 그만큼 우리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생각 한거
올해 내 성적표
올해의 인프랩에서 내 성적표는 그냥그냥 인거 같다. 특히 연초부터 중순까지 내가 어느정도까지 업무에 관여해야 되는지 눈치보고 생각하다가 이도저도 아닌체로 있었던게 많았다. 우유부단했다. 시간을 낭비한거 같아서 많이 후회된다. 근데 머 배운거도 있응까 됐지머.. 해도 비용이 좀 크긴 한듯.큐ㅠ
교육 + 채용
운동
올해 초부터 시작한 PT 운동을 연말까지 계속 이어갔다. 물론.. 뭐.. 맨날 한빠지고 한거도 아니고 살빠진거도 아니지만 우짜든 하긴 했다. 이건 꽤 잘한거 같다. 근데 넘 멀어서 회사에 로잉머신을 사서 운동하는게 좋을거 같다. BS파트가 아마도 사주기로 했다.
건강
회사 건강 검진에서의 결과로 의사가 토욜 아침에 직접 전화했다. 간 수치가 살짝 높다고 신경써야 될 정도라고 한다. 나와서 피뽑으라고.ㅠㅠ
건강에 좀 더 신경써야겠다고 반성했다. 샌드위치 많이 먹어야징.
갓오브워
진짜 간만에 플스겜을 했는데, 크레토스가 자상한 아빠가 되니까 별로다. 그리고 역시 아들말고 딸이 좋은거 같다. 로키 싫어. 앨리 짱!
난 좋은 동료인가
팀에 성실하고 좋은 동료들이 많이 모이고 지켜보면서 날 다시 생각하곤 한다. 내가 일반적으로 좋은 동료인가???? 하면 음. 아닌거 같다 일반적으론. 난 보통으론 나같은애 안뽑을거니까.ㅋ 내 색깔을 갖고 일반적으로도 좋은 동료가 어케 되는지 종종 생각해본다.
다시 자산 마이너스 됐다
개인적 재정상태가 + 였다가 다시 완전 -로 돌아섰다..ㅋㅋㅋㅋ 열씨미 일해야지..ㅠㅜ
기대되는거
퍼즐들의 준비가 다 되어 간다.
조립할 부품들이 준비가 끝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몇개가 더 필요하고 다듬는 작업은 필요하겠지만, 우짜든 준비단계는 끝나가고 조립하고 작동시킬때가 가까워 온다는게 느껴진다.
혹한기와 방향
큰 선택의 문제들이 꽤 있었다.
우린 어쩜 사업적으로는 옳지 않고, 비전적으로는 옳은 결정을 했다. 이것들이 어떻게 미래에 발현이 될지 잘 모르겠다. 난 옳은 선택들 이었다고 생각한다. + 희망한다.
모두들(나를 포함해) 기대하듯 공포스러운 내년을 이야기 한다. 많은 팀들이 시험대에 오를것이고 옥석이 가려질거라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힘든 한해가 될수도 있다. 그래도 기업은, 프로들이 모인 팀은 성과와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걍 부자들 돈으로 스타트업 문화놀이 한거지.
난 우리 팀이 여전히 부족하지만 꽤 훌륭한 팀이고,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문화를 가진 팀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이건 단지 내 생각이고, 이것을 내년부터 세상에도 증명하고 싶다. 이 팀이 얼마나 좋은 팀이고, 나와 팀원들이 무엇을 해내는지.
인프랩 시작한지 벌써 7년이 넘었다.
내년은 특히 더 재밌을거 같다.
잊지 말거.
취하지 말자.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걸 잊지 말자.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하자.
한계단 높이서 생각하자.
지각하지 말자
2022년 끝!
2023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