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강남역에서 스터디가 있어서 지나가다 말로만 듣던 포스트잇들을 보게됐다. 같은 마음으로 추모하기에도 모자란 일인데, 미친놈 하나와 몇 또라이들 때문에 이런 꼴사나운 모습이 연출되다니.. 돌아오는 길에 왜 이렇게 까지 일이 커졌나 생각을 해봤다.
어떤 좋은 의도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이성적인 인과관계를 통한 설득, 공감 작업이 필요하다. 사회운동 이라는 본질적 목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 하는 작업이니까. 근데 이번 ‘여혐사건’ 논란은 그 부분이 없다. ‘여혐사상’ 을 가진 개인의 사건이 어떻게 사회 전반에 퍼진 여혐현상의 근거가 되는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게다가 여혐사건 이라는 단어적 정의 여부에 따라 잠재적 동조자 타이틀을 걸어주거나, ‘걱정’을 해주는 남성들에게 방조자란 인식을 씌우는 듯한 글들은 그간의 스트레스를 생각하더라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 인과관계의 부실함에 사회운동을 진행한다면, 오히려 더 안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가능성이 크다. 이성적 설득이 불가능할때 감정적으로 호소하기 위해 극단적인 문구들을 던지게 되는데 이건 그 운동주체들의 낮은 수준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이성이 아닌 단지 공감만을 앞세운다면 그건 공감을 앞세운 폭력밖에 되질 않으니까. 그럼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편견이 생겨버린다. 그래서 중요한 가치일수록 명분과 인과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자극적인 문구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쉬움이 있다. 남녀 둘다. ‘너희들은 남자라서 운이 좋은줄 알아’, ‘늬들이 우리의 고통을 아냐’ 라는 식의 수준이하의 메세지가 아니라 ‘여성이 좀더 안전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을 마련해 주세요’ 같은 메세지를 던지고 이에 집중했더라면 지금같이 어이없는 갈등은 벌어지지 않았겠지.
역설적이게도 이번 논란으로 인해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시각이 오히려 안좋아질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균형있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전혀 그렇지 못한 극단적인 사람들이니까. 균형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렸거나, 혹은 이 상황에서 목소리를 키울 수 있을만큼의 수가 안되는 거겠지.
이번 사건의 최대 승자는 일베와 메갈이 아닐까 싶다. 이런 극한 갈등을 만들어 냈고, 각기 진영에서 꽤 괜찮은 지지도 받고 있고, 그토록 바라는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잖아. ㅋㅋㅋ 나같은 사람도 이 문제로 글을쓰는데!! 나머지는 모두 패자며 휘둘려버린 머저리다. 나조차도.
이번 일이 어떻게 수습될까.. 관심이 시들어져 버리는 것보다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진 여성집단이 격양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게 모양이 가장 좋을거 같은데 그건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다. 지금 상황을 보자면 한국 사회는 아직 그럴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거 같다.